2022년의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이다. 이 일을 글로 쓰기가 두려운 마음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갑갑함, 상황에 대한 기억과 혼자만의 생각이 뒤섞여 잘못된 기억으로 변질됐을 가능성 등으로 두렵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을 자초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가장 깊은 곳의 생각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8월 말이었다. 비가 왔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왔다. 흠뻑 젖도록 내렸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 2명과 학교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그중 A는 교실 청소를 하던 나를 기다리고 같이 나왔다. 다른 친구 1명과 나는 우산이 없었다. A는 검은 우산 하나를 갖고 있었다. 학생들의 등하교 입출구는 후문이었다. 후문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내가 당시 살던 집이 가까운 아파트 단지가 있고, 앞의 내리막길로 가면 주택가를 빠져나와 도로가 있는 길로 갈 수 있다.
난 A와 3학년 동안 내리막길 방향으로 함께 하교했었다. 그날도 같았던 것 같다. 다만 A가 내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과 우산이 없는 다른 친구 1명이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할 수 있겠다.
학교 건물을 막 빠져나와 나를 포함한 세 명이 같이 가려던 찰나,(난 아직 처마 밑에 있고 두 친구는 한 우산을 쓴 채 조금 더 앞에 가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같이 다녔던 친구 B였다. 6학년 때 그 친구가 어느날 자신의 생일을 알렸고, 내가 다음날 생일 선물을 준 이후로 더 많이 친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바로 옆 동 아파트에 살아 여러 번 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던 기억도 난다.
나에게 우산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없다고 했고, 혹시 행정실(우산 대여가 가능했다) 우산을 찾아보았냐고 답했다. B는 가봤지만 없었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
B가 누구인지도,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내 앞에 있던 두 친구 중 A는 내게 손짓했고, 나는 유야무야 어리버리하며 A에게로 갔다. 우산 없이 처마 밑에 서있는 B를 두고 말이다. 절대 그래선 안됐었다. B를 멍하게 보며 가버리는 내게 B는 매우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우산도 없이 흠뻑 비 맞고 가야 하는데 쌩하니 친구가 가버리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렇게 두 친구와 한 우산을 같이 쓰며(사실상 아무 효과는 없지만) B에게서 멀어지면서, 가슴 속이 벌렁거렸다. A에게 '여기 친구도 우산이 없고 우리 둘 다 저쪽 길이 더 빠르기도 해서 난 절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진작 말하고 B와 같이 갔으면 됐는데, 그 한마디 말할 타이밍을 놓쳐 홀로 비 속을 뛰어가야 할 친구를 버리고 떠난 상황이 돼버렸던 것이다. 난 빨리 B에게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A에게 셋이서 우산 쓰면 너희도 다 젖으니 난 저쪽으로 가겠다, 저쪽이 나한텐 샛길이라 난 괜찮다, 라고 급히 말하고 빠져나왔다. 곧장 후문 쪽으로 다시 뛰어가니 비를 맞으며 달려 나오는 B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B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던 것 같다.
B에게 내 체육복 겉옷을 주고, 난 메고 있던 가방을 들고 우산 삼아 함께 집으로 뛰어갔다. B가 내게 왜 다시 왔냐고 물었다. 난 2번째 절망적인 실수를 이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가 아까 진작에 같이 갔어야 했는데 어리버리하다 먼저 가게 됐어 정말 미안해, 너랑 같이 가려고 다시 되돌아왔어.' 라고 해야 할 것을,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서..'라고 해버린 것이다.
B는 내게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얘는 '넌 모르겠고, 난 일단 가봐야겠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두고 간 것도 당황스러운데, 다시 돌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래서..'라니, 그렇다면 우산을 같이 쓰는 사람이 둘이 아닌 한 명이었다면 그대로 영영 가버렸겠구나, 하고도 생각이 들 법한 말이다.
서로 바로 옆 동에 살았기에 각자 집 앞에서 헤어지고 난 후, 난 아무도 없는 집 안방에 들어가 바닥에 누워버린 채 내가 방금 한 두 차례의 거대한 실수, 실언을 가슴 깊이 되새기고는 머릿속이 쿵하며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생판 모르는 친구가 우산이 없어도 챙겨주는 것이 상식적인데, 6학년 때부터 봐온 친한 친구가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야 할 자신을 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황당하고 또 속상할까.
며칠 뒤 나는 B에게 사과할 방법을 궁리했고, 9월 달 B의 생일에 생일 선물과 함께 사과의 말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내겐 정신적 문제가 있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 문제에 잠식되면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생각 과잉. 생각 과잉이 문제였다.
난 사과와 오해 해소를 위해 어떻게 말을 해야 가장 적합할지, 가장 잘 전달이 될지 머리를 싸맸다. 싸매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B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되는 건데.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또 해버린 것이다.
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가 왜 그때 B를 내버려두고 A 쪽으로 가게 됐는지 생각했다. 1차적으로는 내가 그러한 상황에서 적합한 말과 행동을 하는 순발력과 센스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A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원래 같이 가려던 사람이 A가 아니라 다른 친구였다면? 이런 생각이 났다. 다른 친구였다면 편하게 상황을 말하고 B와 처음부터 같이 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A에 대한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 나로 하여금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 난 이것에서 비롯됐다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유학기제였나, 하는 그런 제도가 있어 같은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끼리 교실에서 자유롭게 앉을 기회가 있었을 때, A가 내게 수업하는 2시간 동안 옆자리에 앉자고 카톡을 보내왔다. 난 같이 앉기로 한 친구가 있어 안될 것 같다 답장했다. A는 내게 '5교시? 6교시에도?'를 시작으로 여러 카톡을 보냈는데, 그중 '난 너에게 어떤 의미의 존재야?'라는 문장도 있었다. 난 무어라 답할지 생각하고 보내려고 A의 입장에서 노란 1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게끔 카톡 내용만 확인하며 손톱을 뜯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바로 옆에 있던 엄마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다가 엄마가 넌 왜 이리 복잡하게 생각을 하냐며 말했고, 결국 언성이 높아지자 방에 있던 아빠가 나와 내 폰을 신발장 바닥에 집어 던져 액정을 깨뜨렸던 기억이 난다.
이 사건 전에도 A가 내게 동아리를 할 생각이 없는지, 가정통신문에 공지된 멘토링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 등 물어봤을 때 내가 여러 번 연속으로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A 입장에서는 끝끝내자유학기제 수업 때도 같이 앉을 수 없다는 내 답에 상당히 서운했을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까지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난 A를 서운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는 데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8월 그날 A에게 B와 같이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A와는 유독 많은 갈등이 있었다. 별의별 유치한 걸로 서로 삐지는 초등학교 1, 2, 3학년 때 이후로는 친구들과 '이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식으로 다툼이 없었다. 사람은 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다른 점이 틀린 점은 아니기에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서로 이해하며 사이좋게, 자연스럽게 지냈던 것 같다. 특이하게도 A와의 관계에서는 갈등의 고비가 많았다.(자세한 건 다음 글에 기록해야겠다) 그만큼 A에게는 조금 특수한, 나만의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B의 생일날, B에게선물 주려고 해서 잠시 내려와줄 수 있냐고 카톡을 보냈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 때 돼서 다시 한 번 더 보냈지만 여전히 1은 그대로였다.
결국 다음날 B가 있는 반에 선물과 편지를 들고 찾아갔다. 교실 앞문 바로 옆자리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B에게 잠시 나와줄 수 있겠냐고 묻고, 선물 전달부터 한 뒤 생각 과잉에 잠겨 생각해온 사과와 해명의 말을 전했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한 내 입으로 뱉은 문장은 이것들이다.
'다른 비슷한 상황이었을 때,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와 뭔가를 했다가...그러니까 그 친구하고 해야 했던 일을 다른 친구와 했다가 갈등같은 게 생긴 적이 있었어.' , '물론 셋이서 우산을 쓰는 건 좀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같이 갔어야 했는데...'
첫 번째 문장은 위에서 구구절절 쓴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라는 내가 생각해낸 근본 원인을 해명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문장은 B가 내게 왜 다시 왔냐고 물었을 때 내가 답으로 말한 실언을 B에게 되돌아가기 전 A에게 했던 말로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희한하게도 저 두 문장을 제외하고는 내가 했던 말들이 선명하지가 않다. B의 교실 앞에서 헤어질 때 손인사하며 본 B의 마스크 위의 두 눈빛은 그야말로 좋지 않은 결말이었다. 나를 보던 그 눈빛 속 속마음은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도 그 눈빛을 떠올리면 마음에 큰 바위가 내려앉는다. 바로 다음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도 이상하게도 저 두 문장 외에는 내가 정확히 어떤 순서로, 어떤 말을 했는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누군가 폭탄을 터뜨리고 간 듯 했다. 그나마 주운 운 폐허 속 조각이 저 두 문장인 듯 했다.
얼떨결에 A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A를 마치 우산 없는 다른 친구를 내버려두더라도 내가 자신과 같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돼버렸다. 2번째 문장이 이를 심화시켰다. '핑계'라는 단어는 뭔갈 숨기기 위해 대신 변명할 때 쓰는 말인데, 우산이 없는 친구와 같은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 A에게 숨겨야 할 일인 것 마냥 설명이 되어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B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그런 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순발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또 실은 같이 가던 그 친구(A)가 개인적으로 조금 어려운 부분이 내 마음에 있는 친구라서 그런 마음 한 켠 속 무의식도 작용했던 것 같아. 많이 당황스러웠을텐데 정말 미안해. 그리고 네가 왜 다시 왔냐고 물었을 때 내가 빗속에서 정신이 없어서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래서 되돌아왔다고 잘못 말했었는데, 너하고 같이 가려고 다시 되돌아온 거였어. 내가 오해까지 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
마지막 말을 미안하다는 말로 마무리하지 않은 게, 처음의 말을 미안해로 시작해서 뒤로 갈 수록 더 이상하고 이해 못할 해명으로 횡설수설 끝마치게 된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 B는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내게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1월 1일에 새해 문자를 보내고, 졸업 때는 어느 학교로 배정받았는지 물어봤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12월 학교에서 단체로 박물관에 갔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다. B가 먼저 곁으로 다가왔고, 난 살짝 오버스럽게 밝은 톤으로 하늘이 흐리다, 같이 있던 두 친구는 어디 있느냐, 시시콜콜 얘기했다. 그 뒤로는 본 적이 없다. 카톡도 읽지 않았다. 몇 개월 뒤 B는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됐다.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가슴 깊이 남은 내 잘못을 이렇게 길게 써봤다.
고등학교에서 가까워진 친구가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었을 때, 두 번 정도 친구의 집까지 내 우산으로 바래다 준 적이 있다. 그때도 B가 생각이 났다. 내가 실수해놓고도 내가 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서,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다른 오해를 생성하는 이상한 해명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렸다는 게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B에게 다시 진실한 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할 기회가, 그런 순간이 과연 찾아올까?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알지만, 꼭 기회가 왔으면 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