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7일 목요일

삶이 어려운 이유

  한 달 전 고1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물리 선생님을 밖에서 뵈어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에게서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어두운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도 대화 내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30일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삶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관계 문제에서 찾아온다는 것... 이것은 우리 엄마에게서도 종종 듣곤 했다. 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정체성으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 하는 등의 쉽게 말해 진로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에 비하면 사실상 문제라고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진로라든가, 돈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어찌 보면 허상에 가깝다. 일시적으로 올라오는 불안이 헛된 욕심과 환상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깨닫는 그 때 한순간에 녹아 사라져버린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내게 주어진 최고의 길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열중하는 것 만으로도 쉽게 가신다. 

 하지만 아아아아... 타인과의 연결에서 오는 문제란, 마음의 문제를 뛰어넘는 듯 하다. 이 우주를 만든 이가 누구이고 도대체 왜 이 모든 것을 벌였느냐, 하는 문제만큼 불가사의하다. 자아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타인이 있기에, 애초에 자아가 있는 이유도 나를 제외한 세상, 즉 타인을 의식함에서 오는 것이기에 속이 썩어 들어가는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할 일도 아니긴 하다. 진로 고민 같은 것도 결국에는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지로 인해 발생하지 않는가.. 내가 속해 있는 이 집단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인식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진로 문제의 궁극적인 고민 아니겠는가..

 어릴 때부터 읽어왔던(지금은 디지털 미디어에 뇌가 정신 팔고 있긴 하지만..) 세계 고전 문학 작품들만 쭉 봐도 온통 인간들 간의 얽히고설킨 사랑, 오해, 다툼, 폭력, 애증,, 그런 문제들이다. 밖으로 표출되어 서로 간에 화살을 꽂는 이야기가 아닌 한 인간의 속이 곪고 병드는 이야기 또한 세상과 자기자신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해 서서히 무너져가는 그런 과정을 보여준다. 다 같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다른 머리로 다른 세계에 갇혀 서로를 바라보기에 인간관계의 문제는 너도나도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상처를 받은 만큼 힘겨움을 주고, 힘겨움을 받는 만큼 상처를 준다. 

 2010년 앨범이었던가.. 오늘날 여러 ost 곡들, 그리고 대표적으로는 순전한 사랑 노래로 알려진 밴드 검정치마의 첫 정식 앨범 '201'의 가장 유명한 트랙 antifreeze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가사에 나온 말 그대로 해석하면 일식 현상을 떠올려볼 수 있는데, 음, 고요한 어둠의 순간을 삶의 여정에서 맞는 순간 진정으로 깨우치게 될 거라고 이해할까.. 아니면 희귀한 현상인 만큼 삶에 기적의 때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는 거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때이든 기적적인 순간이든 그 복잡다단한 여러가지를 인생에서 거쳐가다 보면 지나간 의문점들을 이해하고 세상도, 타인도,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존재 그 자체도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오는 그런 게 아닐까, 하고 희망하는 마음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라고 한다면...2008년에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대표 앨범 이름이다.

 흰색 바탕에 마치 전선의 엉킴과 같은 제목 타이포그래피와 흐릿한 새(아마도 비둘기..)의 그림자가 앨범 제목처럼 말 그대로 가장 보통의 풍경, 가장 보통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어릴 때는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해서 특별한 기대가 가득했다. 지금은 그때의 상상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절망적인 미래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릿속은 환상으로 가득 찼고, 거리를 걸을 때면 예상치 못했던 기적을 만날 것만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올랐다.

 지금은 수많은 걱정들이 하나 둘 씩 돌아가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 중이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면 그 문제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의 큰 응어리로 쌓아둔다. 출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마음에 견고한 창고를 만들어두고 가장 단단한 자물쇠로 잠근다. 분명 그것을 가둔 건 나 자신임에도, 난 비밀번호도 모르고 창고를 부술 용기도 없다. 

 아직도 나를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낮추지 못해서 일까. 나를 가장 보통의 존재라 여긴다면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나든 부정하지 않고 수긍하는 것이 맞지 않나. 삶이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특별한 존재에게 작용하는 일이지, 보통의 존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인데. 거의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바람결에 휭하고 날아가 영원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 또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인데. 좋은 우연이든 나쁜 우연이든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또 어떤 인연이 머무르든 사라져가든 그 어떤 것도 부정할 자격인 없는 존재인데. 가장 보통의 존재란 그런 것인데..

 여전히 미련과 불안과 좌절감이 내 안에 끊임없이 맴돌며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면 난 아직도 내가 가장 보통의 존재임을 진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비에 관한 가장 깊은 회한

  2022년의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이다. 이 일을 글로 쓰기가 두려운 마음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갑갑함, 상황에 대한 기억과 혼자만의 생각이 뒤섞여 잘못된 기억으로 변질됐을 가능성 등으로 두렵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을 자초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가장 깊은 곳의 생각을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8월 말이었다. 비가 왔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왔다. 흠뻑 젖도록 내렸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 2명과 학교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그중 A는 교실 청소를 하던 나를 기다리고 같이 나왔다. 다른 친구 1명과 나는 우산이 없었다. A는 검은 우산 하나를 갖고 있었다. 학생들의 등하교 입출구는 후문이었다. 후문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면 내가 당시 살던 집이 가까운 아파트 단지가 있고, 앞의 내리막길로 가면 주택가를 빠져나와 도로가 있는 길로 갈 수 있다.

 난 A와 3학년 동안 내리막길 방향으로 함께 하교했었다. 그날도 같았던 것 같다. 다만 A가 내가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과 우산이 없는 다른 친구 1명이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할 수 있겠다. 

 학교 건물을 막 빠져나와 나를 포함한 세 명이 같이 가려던 찰나,(난 아직 처마 밑에 있고 두 친구는 한 우산을 쓴 채 조금 더 앞에 가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같이 다녔던 친구 B였다. 6학년 때 그 친구가 어느날 자신의 생일을 알렸고, 내가 다음날 생일 선물을 준 이후로 더 많이 친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바로 옆 동 아파트에 살아 여러 번 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던 기억도 난다.

 나에게 우산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없다고 했고, 혹시 행정실(우산 대여가 가능했다) 우산을 찾아보았냐고 답했다. B는 가봤지만 없었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 

 B가 누구인지도,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내 앞에 있던 두 친구 중 A는 내게 손짓했고, 나는 유야무야 어리버리하며 A에게로 갔다. 우산 없이 처마 밑에 서있는 B를 두고 말이다. 절대 그래선 안됐었다. B를 멍하게 보며 가버리는 내게 B는 매우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우산도 없이 흠뻑 비 맞고 가야 하는데 쌩하니 친구가 가버리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렇게 두 친구와 한 우산을 같이 쓰며(사실상 아무 효과는 없지만) B에게서 멀어지면서, 가슴 속이 벌렁거렸다. A에게 '여기 친구도 우산이 없고 우리 둘 다 저쪽 길이 더 빠르기도 해서 난 절로 가봐야 할 것 같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진작 말하고 B와 같이 갔으면 됐는데, 그 한마디 말할 타이밍을 놓쳐 홀로 비 속을 뛰어가야 할 친구를 버리고 떠난 상황이 돼버렸던 것이다. 난 빨리 B에게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A에게 셋이서 우산 쓰면 너희도 다 젖으니 난 저쪽으로 가겠다, 저쪽이 나한텐 샛길이라 난 괜찮다, 라고 급히 말하고 빠져나왔다. 곧장 후문 쪽으로 다시 뛰어가니 비를 맞으며 달려 나오는 B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B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던 것 같다.

 B에게 내 체육복 겉옷을 주고, 난 메고 있던 가방을 들고 우산 삼아 함께 집으로 뛰어갔다. B가 내게 왜 다시 왔냐고 물었다. 난 2번째 절망적인 실수를 이때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가 아까 진작에 같이 갔어야 했는데 어리버리하다 먼저 가게 됐어 정말 미안해, 너랑 같이 가려고 다시 되돌아왔어.' 라고 해야 할 것을,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서..'라고 해버린 것이다.

 B는 내게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얘는 '넌 모르겠고, 난 일단 가봐야겠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두고 간 것도 당황스러운데, 다시 돌아와서는 한다는 말이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래서..'라니, 그렇다면 우산을 같이 쓰는 사람이 둘이 아닌 한 명이었다면 그대로 영영 가버렸겠구나, 하고도 생각이 들 법한 말이다.

 서로 바로 옆 동에 살았기에 각자 집 앞에서 헤어지고 난 후, 난 아무도 없는 집 안방에 들어가 바닥에 누워버린 채 내가 방금 한 두 차례의 거대한 실수, 실언을 가슴 깊이 되새기고는 머릿속이 쿵하며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생판 모르는 친구가 우산이 없어도 챙겨주는 것이 상식적인데, 6학년 때부터 봐온 친한 친구가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야 할 자신을 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황당하고 또 속상할까.

 며칠 뒤 나는 B에게 사과할 방법을 궁리했고, 9월 달 B의 생일에 생일 선물과 함께 사과의 말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내겐 정신적 문제가 있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 문제에 잠식되면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생각 과잉. 생각 과잉이 문제였다.

 난 사과와 오해 해소를 위해 어떻게 말을 해야 가장 적합할지, 가장 잘 전달이 될지 머리를 싸맸다. 싸매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B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되는 건데.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또 해버린 것이다.

 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가 왜 그때 B를 내버려두고 A 쪽으로 가게 됐는지 생각했다. 1차적으로는 내가 그러한 상황에서 적합한 말과 행동을 하는 순발력과 센스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A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원래 같이 가려던 사람이 A가 아니라 다른 친구였다면? 이런 생각이 났다. 다른 친구였다면 편하게 상황을 말하고 B와 처음부터 같이 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A에 대한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 나로 하여금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 난 이것에서 비롯됐다 생각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유학기제였나, 하는 그런 제도가 있어 같은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끼리 교실에서 자유롭게 앉을 기회가 있었을 때, A가 내게 수업하는 2시간 동안 옆자리에 앉자고 카톡을 보내왔다. 난 같이 앉기로 한 친구가 있어 안될 것 같다 답장했다. A는 내게 '5교시? 6교시에도?'를 시작으로 여러 카톡을 보냈는데, 그중 '난 너에게 어떤 의미의 존재야?'라는 문장도 있었다. 난 무어라 답할지 생각하고 보내려고 A의 입장에서 노란 1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게끔 카톡 내용만 확인하며 손톱을 뜯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바로 옆에 있던 엄마에게 그 얘기를 털어놓다가 엄마가 넌 왜 이리 복잡하게 생각을 하냐며 말했고, 결국 언성이 높아지자 방에 있던 아빠가 나와 내 폰을 신발장 바닥에 집어 던져 액정을 깨뜨렸던 기억이 난다.

 이 사건 전에도 A가 내게 동아리를 할 생각이 없는지, 가정통신문에 공지된 멘토링 프로그램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 등 물어봤을 때 내가 여러 번 연속으로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A 입장에서는 끝끝내자유학기제 수업 때도 같이 앉을 수 없다는 내 답에 상당히 서운했을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존재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까지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난 A를 서운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는 데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라는 무의식적 생각이 8월 그날 A에게 B와 같이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사실 A와는 유독 많은 갈등이 있었다. 별의별 유치한 걸로 서로 삐지는 초등학교 1, 2, 3학년 때 이후로는 친구들과 '이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건 좀 아닌 것 같아' 식으로 다툼이 없었다. 사람은 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다른 점이 틀린 점은 아니기에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서로 이해하며 사이좋게, 자연스럽게 지냈던 것 같다. 특이하게도 A와의 관계에서는 갈등의 고비가 많았다.(자세한 건 다음 글에 기록해야겠다) 그만큼 A에게는 조금 특수한, 나만의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B의 생일날, B에게선물 주려고 해서 잠시 내려와줄 수 있냐고 카톡을 보냈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 때 돼서 다시 한 번 더 보냈지만 여전히 1은 그대로였다.

 결국 다음날 B가 있는 반에 선물과 편지를 들고 찾아갔다. 교실 앞문 바로 옆자리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B에게 잠시 나와줄 수 있겠냐고 묻고, 선물 전달부터 한 뒤 생각 과잉에 잠겨 생각해온 사과와 해명의 말을 전했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한 내 입으로 뱉은 문장은 이것들이다.

 '다른 비슷한 상황이었을 때,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와 뭔가를 했다가...그러니까 그 친구하고 해야 했던 일을 다른 친구와 했다가 갈등같은 게 생긴 적이 있었어.' , '물론 셋이서 우산을 쓰는 건 좀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같이 갔어야 했는데...'

 첫 번째 문장은 위에서 구구절절 쓴 특수한 무의식적 긴장감이라는 내가 생각해낸 근본 원인을 해명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문장은 B가 내게 왜 다시 왔냐고 물었을 때 내가 답으로 말한 실언을 B에게 되돌아가기 전 A에게 했던 말로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희한하게도 저 두 문장을 제외하고는 내가 했던 말들이 선명하지가 않다. B의 교실 앞에서 헤어질 때 손인사하며 본 B의 마스크 위의 두 눈빛은 그야말로 좋지 않은 결말이었다. 나를 보던 그 눈빛 속 속마음은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도 그 눈빛을 떠올리면 마음에 큰 바위가 내려앉는다. 바로 다음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도 이상하게도 저 두 문장 외에는 내가 정확히 어떤 순서로, 어떤 말을 했는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누군가 폭탄을 터뜨리고 간 듯 했다. 그나마 주운 운 폐허 속 조각이 저 두 문장인 듯 했다.

 얼떨결에 A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A를 마치 우산 없는 다른 친구를 내버려두더라도 내가 자신과 같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돼버렸다. 2번째 문장이 이를 심화시켰다. '핑계'라는 단어는 뭔갈 숨기기 위해 대신 변명할 때 쓰는 말인데, 우산이 없는 친구와 같은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 A에게 숨겨야 할 일인 것 마냥 설명이 되어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B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그런 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순발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 또 실은 같이 가던 그 친구(A)가 개인적으로 조금 어려운 부분이 내 마음에 있는 친구라서 그런 마음 한 켠 속 무의식도 작용했던 것 같아. 많이 당황스러웠을텐데 정말 미안해. 그리고 네가 왜 다시 왔냐고 물었을 때 내가 빗속에서 정신이 없어서 셋이서 우산 쓰는 건 좀 그래서 되돌아왔다고 잘못 말했었는데, 너하고 같이 가려고 다시 되돌아온 거였어. 내가 오해까지 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

 마지막 말을 미안하다는 말로 마무리하지 않은 게, 처음의 말을 미안해로 시작해서 뒤로 갈 수록 더 이상하고 이해 못할 해명으로 횡설수설 끝마치게 된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 B는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내게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1월 1일에 새해 문자를 보내고, 졸업 때는 어느 학교로 배정받았는지 물어봤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12월 학교에서 단체로 박물관에 갔을 때 본 것이 마지막이다. B가 먼저 곁으로 다가왔고, 난 살짝 오버스럽게 밝은 톤으로 하늘이 흐리다, 같이 있던 두 친구는 어디 있느냐, 시시콜콜 얘기했다. 그 뒤로는 본 적이 없다. 카톡도 읽지 않았다. 몇 개월 뒤 B는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됐다.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가슴 깊이 남은 내 잘못을 이렇게 길게 써봤다.

 고등학교에서 가까워진 친구가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었을 때, 두 번 정도 친구의 집까지 내 우산으로 바래다 준 적이 있다. 그때도 B가 생각이 났다. 내가 실수해놓고도 내가 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서,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다른 오해를 생성하는 이상한 해명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렸다는 게 가슴에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B에게 다시 진실한 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할 기회가, 그런 순간이 과연 찾아올까? 그럴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알지만, 꼭 기회가 왔으면 하고 소망한다.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묵혀온 기억 밖으로 꺼내기

 곧 자정이 되어간다. 사실 내일로 넘어가기 전에 이때 이 시간에 쓰려고 했던 게 있었다. 머릿속에만 담아두니까 자꾸 엉킨 실타래처럼 뒤엉키고 갈수록 안개가 켜켜이 쌓이는 것만 같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글로 꼭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blogger에 지금 막 처음으로 가입한 건데, 새 구글 계정을 만들고 blogger이 입력하라는 칸에 정보를 고심해 입력하고 옵션을 선택하고.. 하다보니 지쳐버렸다. 시간도 늦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평일보단 느긋한 때이지만 일하는 날이므로 고민과 생각에 잠겨 잠을 자고 일어나선 안될 것 같다. 따라서 내일 저녁시간에 마음 먹었던 것을 이 공간에 실토하고 생각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기로 한다.

영화같은 낭만이나 기적을 꿈꾸진 않으려 한다. 그저 나라는 미물이 순간을 살아내는 최선의 방법을 글을 쓰며 조금이나마 모색해낼 수 있길 바란다.

삶이 어려운 이유

  한 달 전 고1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물리 선생님을 밖에서 뵈어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에게서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어두운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도 대화 내용이 머릿속에...